"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인문학 화두로 떠오른 '모빌리티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움직이는 인간에 대한 연구 활발
유럽은 항공사 등과 산학 협동… 국내엔 '모빌리티 연구원' 생겨



움직임을 뜻하는 '모빌리티(Mobility)'가 인문학의 새 화두로 떠올랐다. 비행기·기차·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은 물론, 인터넷과 모바일 같은 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문학의 관심도 '정주(定住)'에서 '이동(移動)'으로 변화한 것이다. 21세기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가 살았다면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건국대는 최근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을 개원하고 '모빌리티 이론'과 '모빌리티와 인문학' '모바일 장의 발자취' 등 세 권의 번역서를 발간했다. 모빌리티라고 이름 붙인 국내 대학의 인문학 연구원은 처음이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에 선정된 이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에만 번역서와 학술서, 대중 교양서 등 9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앞으로 7년간 100권의 총서 발간이 목표다.

‘모빌리티 인문학'은 교통·통신 발달에 따른 인간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 그러다 보니 KTX 서울역(왼쪽부터)이나 ‘자전거 천국'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성공 사례, 인천국제공항 등이 모두 연구 대상이자 관찰 장소가 된다.

 

‘모빌리티 인문학'은 교통·통신 발달에 따른 인간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 그러다 보니 KTX 서울역(왼쪽부터)이나 ‘자전거 천국'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성공 사례, 인천국제공항 등이 모두 연구 대상이자 관찰 장소가 된다. /김지호 기자·정경열 기자

오는 6월에는 영국 랭커스터대의 '모빌리티 연구센터'와 공동 학술대회를 영국에서 열고, 10월엔 미국·영국·호주 등 10개국에서 참여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다. 신인섭 원장은 “21세기 인간은 가만히 머무르거나 멈춰 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라며 “인문학도 학제 간 융복합을 넘어 '영역 파괴'라는 열린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인문학'은 유럽에서도 1990년대 들어서 본격 연구되고 있는 '신생 학문'이다. 2007년 저서 '모빌리티'를 펴낸 영국 사회학자 존 어리(1946~2016)의 말에 따르면 “조기 은퇴자, 국제 유학생, 테러리스트, 해외 이주자, 행락객, 사업가, 노예, 스포츠 스타, 망명 신청자, 난민, 배낭족, 통근자, 젊은 모바일 전문직 종사자, 매춘부 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연구 대상이다. 공항 터미널과 철도역, 고속도로와 소셜미디어의 네트워크가 관찰 현장. 김한상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전까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국가·지역 등으로 고정돼 있었다면, 지금은 그 영역과 경계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면서 “대중교통 인프라 같은 정책적 연구뿐 아니라 역사·문학 등 인문학에서도 이동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자동차·철도·항공 회사와 연구기관의 산학(産學) 협동도 활발하다. 실례로 프랑스 철도공사(SNCF)는 2011년 연구기관 '이동적 삶 포럼'을 만들고 저탄소 에너지 이용 방안이나 철도역의 언어 장벽 개선 같은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독일 BMW 역시 모빌리티 연구소(IMFO)를 통해서 자율 운행 차량과 신사업 모델, 운전자 인구 변화 같은 주제들을 파고들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 관련 경험과 연구 사례를 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Dutch Cycling Embassy)'이라는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테러와 난민, 실종자 수색이나 감시 카메라(CCTV) 설치 등 모빌리티의 연구 영역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존 어리, 모빌리티'를 펴낸 이희상 대구가톨릭대 겸임교수는 “'모빌리티 인문학'은 학문적 역사가 비교적 짧기 때문에 이론과 실천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고 사회학·지리학·건축학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초(超)분과 학문'이란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5/20190325001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