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탐방 기록 : 창덕궁 (돈화문 – 인정전 – 선정전 – 낙선재 – 규장각)


5월 24일(금) 오전 10~12시까지 진행된 제3차 우리동네 탐방은 임찬웅 문화유산해설사의 진행아래 <어차가 드나들던 창덕궁> 주제아래돈화문 – 인정전 – 선정전 – 낙선재 – 규장각을 함께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사적 제 122호인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건축된 조선시대의 궁궐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평탄한 곳에 질서 정연하게 인위적으로 들어선 경복궁과는 달리, 자연지형에 맞게 배치되어 조선 왕조의 독특한 궁궐 건축과 정원 문화를 대표한다.

처음 지어진 건축물들은 전쟁과 화재로 사라졌지만 이후 세워진 건축물들은 조선 시대 궁궐 건축의 변천사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숲과 나무, 연못, 정자, 화단 등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후원은 창덕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창덕궁의 상징이자 정전인 인정전. 인정전은 태종 때 처음 지어진 뒤 임진왜란과 화재로 세 번이나 잿더미로 변했다가 1804년에 네 번째로 건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정전은 나랏일을 논의하던 편전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청색 기와로 지붕이 덮인 곳이다. 당시 청색 기와는 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에 왕이 나랏일을 보던 선정전만 청색 기와를 덮은 것이며, 훗날 희정당으로 편전을 옮긴 이후에 선정전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궁궐 동쪽 끝에는 헌종이 후궁을 위하여 마련한 공간인 낙선재가 있다. 낙선재에는 비운의 마지막 황태자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던 영친왕이 머물기도 했으며, 고종의 7번째 아들이었던 영친왕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일본 왕족인 이방자 여사와 결혼했으며, 독립 후 1963년 귀국하여 이곳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였다.